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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필휴지

울분은 우울증과 연결되는 플랫폼

 

- “매화가 있는 감실(龕室) 가운데 유자를 놓아두는 것은 매화를 모욕하는 짓이다. 예전부터 매화는 맑은 덕과 깨끗한 지조가 있다고 하는데, 어찌 다른 물건의 향기를 빌려 매화를 돕는단 말인가.

 

매화와 유자만 그렇겠는가? 사람 역시 모두 자기 나름의 향기와 색깔을 가지고 있다. 다른 향기에 나의 향기가 덮이고, 다른 색깔에 나의 색깔이 묻히는 곳에는 애초에 나아가지 않아야 한다.

 

마땅히 자신의 향기가 더욱 진하게 퍼져 나가는 곳, 자신의 색깔이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하는 곳에 자리해야 한다.” -

 

조선 후기의 북학파 실학자였던 이덕무(李德懋)의 글을 재해석한 도서 [문장의 온도]에 나오는 의미심장의 글이다. 윗글을 읽노라면 새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이는 흔히 권력과 언론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주로 쓰이는데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고 너무 멀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중용(中庸)의 의미와 비슷하다.

 

인간관계와 연관된 사자성어가 많다. 동병상련(同病相憐)같은 병자끼리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도움을 의미한다.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온전하기 어려움을 비유하고 있다.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는 뜻으로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표리부동(表裏不同)겉과 속이 같지 않음이란 뜻으로 마음이 음흉 맞아서 겉과 속이 다름이란 뜻이다. 양두구육(羊頭狗肉, 정육점 등에서 양 머리를 걸어놓고, 실제로는 개고기를 판다)과 흡사하다.

 

828일 자 동아일보에 [“국민 절반이 장기적 울분상태”]라는 기사가 실렸다. 국민의 절반가량이 장기적 울분 상태에 놓여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울분(鬱憤)은 부당함과 모욕 등 스트레스 경험에 대해 분노뿐만 아니라 깊은 좌절과 무력감이 동반되는 감정적 반응이다.

 

이는 나도 최근에 새삼 느끼는 반응이다. 울분은 우울증과 연결되는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심각하다. 다행히 현자(賢者) 교수님의 도움을 받은 덕분에 가까스로 그 심각성의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마치 구들더께(늙고 병들어서 방 안에만 들어박혀 있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같은 사람이건만 돈이 되고 공술이라도 먹을 기회가 되면 기가 막히게 찾아다니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이런 자를 일컬어 거통이라고 한다. 별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면서 괜스레 큰소리를 치며 거들먹거리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런 사람 역시 애먼 매화를 모욕하는 유자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