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安重根)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안중근은 만주 하얼빈역에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으며 그해 11월 러시아 헌병대에서 사형 집행되었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반면 최재형은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럼 최재형(崔在亨)은 누구일까?
최재형은 열한 살에 집을 뛰쳐나와 거리를 헤매다가 세계를 돌며 무역을 하는 선장에게 발견된다. 선생은 그 후 선장의 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돌아보게 된다. 두 번에 걸친 긴 항해는 선생에게 원대한 꿈을 잉태하는 계기가 되었다.
선생은 성실과 근면으로 견문을 넓히고 러시아어는 물론 중국어에도 능통해 러시아에서 꼭 필요한 인재로 성장한다. 열한 살 때부터 열일곱 살까지 6년간의 항해를 마친 선생은 여기저기에서 통사로 일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고, 시베리아에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는 책임자로 발탁된다.
도로공사를 성공리에 마친 뒤에는 러시아로부터 여러 번 훈장을 받는다. 그 후 선생은 러시아 얀치혜의 읍장에 선출된다. 또한 애국심에 불탔던 선생은 러일전쟁 때부터 일본군과 싸웠고, 그 후부터 본격적으로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최재형 선생처럼 든든한 뒷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까지 이런 훌륭한 분을 잊고 살았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최재형 선생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 국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리라.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다.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와 대한민국이 수교하게 되면서 선생에 관한 자료가 비로소 속속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최재형 선생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훗날 거부가 되었고, 자신이 번 돈을 모두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한 자금으로 썼다.
또한 자신이 사는 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인 중 하나가 되었다. 사람은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까지 바뀐다. 안중근의 쾌거는 최재형을 만나지 않았던들 어쩌면 불가능했을 거사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건 상식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최재형 선생을 기리며 기념하고 추모하는 행사가 많아져야 한다.
아울러 어떡해서든 선생의 유해를 찾아 국립묘지에 모시는 당연한 국민적 예의까지 실천해야 옳다. 최재형 선생 덕분에 오늘날 당당하게 선진국 반열에까지 오른 우리 국민들은 선생께 진정 죄스러움까지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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