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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즐거워

[拙詩] 송광사 가는 길

 

장맛비가 제주를 점거한 뒤 호남으로 들이닥친 어제 새벽

잠꾸러기 아내가 새벽 네 시도 안 돼 호들갑을 떨었다

 

이유는 자명했다

송광사(松廣寺)로 봉사하러 간다고 했다

독실한 불자인 아내는 작년부터 사찰에서 봉사하는 재미가 붙었다

 

가뜩이나 건강도 안 좋아서 늘 침대와

동무하는 아내였는데 어쨌거나 봉사한다니 내가 더 반가웠다

 

오전 다섯 시까지 00000 사찰에 도착하여 관광버스로 송광사까지 간댔다

그래서 전날부터 내가 더 긴장스러웠다

그 시간에는 시내버스가 운행하지 않는 시간이어서 택시를 불러야 한다

 

그런데 혹여 카카오택시라도 오지 않는다면 가뜩이나

고삭부리 아내는 성남동 사찰까지 뚜벅이로 걸어서 가야 할 형편이었다

 

하여 택시가 오지 않으면 사찰까지 동행하여 데려다 줄 작정이었다

다행스럽게 콜택시는 불과 5분여 만에 번개처럼 왔다

 

택시에 타려는 아내 주머니에 미리 준비한 신사임당 두 장을 찔러줬다

당신 돈이 어디 있다고?

 

마누라가 절에 봉사 가는데, 더욱이 우리 가족 무탈을 부처님께

발원하러 가는 길인데 아무리 어렵기로서니 마누라에게 용돈조차 못 줄 리가

 

걱정하지 마! 다음 달부턴 하루 네 시간짜리 공공근로 일하기로 했으니까

오후 3시 무렵부터 순천에서 북상한 장맛비가 드디어 실체를 드러냈다

 

걱정이 되어 문자를 보냈다

돌아오는 중인가요? 여기도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몇 시쯤 도착하나요?”

 

귀가한 아내의 미소가 보름달을 훔쳤다

입도 덩달아 부산스러웠다

 

아내가 좋아하니 나도 덩달아 좋을 수밖에

애먼 소주만 기분 좋게 한 병을 더 추가했다

 

송광사(松廣寺) = 전라남도 순천시 조계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 합천 해인사, 불보사찰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한국 불교의 '삼보사찰' 중 하나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