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눈을 뜬 시간은 새벽 4시. 첫 발차의 시내버스로 출근을 하는 것도 아닌 나는 현재 ‘백수’다. ‘백수’는 의미도 다양하다.
백수(白壽)는 사람의 나이 아흔아홉 살을 의미한다. 백(百)에서 일(一)을 빼면 99가 되고 ‘白’ 자가 되는 데서 유래한다. 다음의 백수(百獸)는 온갖 짐승이며, 백수(白水)는 깨끗하고 맑은 물이다.
쌀을 씻고 난 뿌연 물과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또 다른 백수(白叟)는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고, 백수(白首)는 허옇게 센 머리를 나타낸다. 여기에 나는 ‘직업이 없는 사람’을 나타내는 진짜(?) 백수까지 얹었다.
설상가상 또 다른 백수(白手, 손에 아무것도 갖지 않음)의 가난뱅이 작가 겸 기자다. 작년까지는 공공근로라도 근근이 하였는데 올 들어선 그 일자리마저 사라지고 없다.
겨우 하는 거라곤 이처럼 글을 쓰거나 취재를 하는 것인데 고료와 취재비가 연동이 되지 않는 까닭에 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쨌든 어제에 이어 오늘도 새벽바람부터 일어난 이유는 단 하나, 배가 고파서였다.
냉장고를 열어 달걀과 게맛살을 꺼내 섞은 뒤 프라이팬에 부치기 시작했다. 그 소리 때문이었을까, 아내도 깨서 주방으로 나왔다(아내와 나는 각방을 쓴다).
"시방(지금) 뭐 하는 겨?" "응, 엊저녁에 밥을 덜 먹었는지 배가 고파서..." 이내 아내의 힐난이 돌아왔다.
"하여간 당신은 못 말려! 우리가 아파트서 살았다면 벌써 쫓겨나고도 남았을 껴. 당신이 새벽부터 쿵쾅거리며 돌아다녀서 잠을 제대로 못 잔다며 아래층 사는 사람이 쫓아올 건 불을 보듯 뻔하니께 말여." "......!!"
아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지은 지가 오래된 3층의 빌라이다. 지금은 타계하셨지만, 몇 년 전까지 바로 위층엔 할머니가 사셨다. 한데 그 할머니의 '부지런'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재래시장의 난전(亂廛)에 나가 팔 요량으로 심지어 새벽 2시부터 마늘을 절구에 찧는 소리는 너무 많이 들어서 만성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 땜에 시끄러워 도저히 못 살겄슈!"라며 찾아가 어필한 적은 없다.
늘그막에 혼자 사시는 것도 억울하거늘 층간소음이란 이유만으로 항의까지 한다는 건 너무 한다 싶어서였다. 다음은 2024년 6월 3일 자 한국경제에 실린 ["층간소음 신고했다가 칼부림 공포"…결국 짐 싸는 입주민들 [현장+]]라는 제호의 뉴스다.
- “층간소음 때문에 해코지당할까 너무 불안합니다. 최대한 빨리 이사 가려 합니다.”(서울 이촌동 A 아파트 입주민 K 씨) 지난달 30일 오후 6시께 서울 이촌동 A 아파트 앞.
용산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아파트 주위를 맴돌며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층간소음 갈등으로 인해 한 입주민이 경비원에게 칼을 들이미는 등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다.
입주민 B 씨는 “밤낮 할 것 없이 들려오는 고함 소리와 집 안에서 보행기를 끄는 소리에 참다 참다 이웃들이 층간소음 신고를 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흉기 위협이었다”고 했다.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층간소음 때문에 발생한 이웃 간 갈등이 칼부림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층간소음 상담 건수는 3만 6,435건에 달했다. 4년 전인 2019년 2만 6,257건보다 38.7% 증가한 수치다. 이웃 간 층간소음 갈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강력범죄도 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층간소음으로 시작된 살인·폭력 등 5대 강력범죄는 2016년 11건에서 2021년 110건으로 5년 새 10배 증가했다.(중략)
이웃 간 갈등이 칼부림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종종 벌어진다. 지난 3월 경기 용인시 어떤 아파트에선 50대 주민이 층간 소음으로 갈등을 빚던 윗집 주민을 흉기로 찔러 부상을 입힌 사건이 벌어졌다.
1월에는 경남 사천시 한 빌라 계단에서 층간소음에 항의하던 주민이 위층 주민을 찔러 살해하는 사건도 벌어졌다.(후략)“ -
LH(한국주택공사)가 저소득층의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임대 아파트 사업에 나선 게 지난 1971년이라고 한다. 어느새 53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싶은 와중에 나도 30여 년 전에는 잠시 그 임대 아파트에서 살았던 때가 생각난다.
당시에도 아내는 아파트의 특성상 '조심조심 코리아'가 아니라 '조심조심 발걸음'으로 살아야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윤수일은 1998년에 <아파트>를 발표했다.
=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그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 언제나 내게 언제나 내게 속삭이던 너의 목소리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 버린 너를 못 잊어 어~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
전국 미분양 아파트가 3년 만에 5배로 증가했으며. 7만 가구를 넘었다는 뉴스를 봤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최근 분양가가 치솟고, 고금리에 따른 수요 감소로 지방 주택 시장이 침체하면서 생긴 필연적 현상이 아닐까 싶다.
집 근처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마구 올라가는 초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저 고가의 아파트에 입주하는 사람의 직업은 과연 뭘까. 나는 과연 죽기 전에 저런 아파트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 아무튼 윤수일의 가요처럼 아무도 없는 쓸쓸한 아파트처럼 보기 흉한 것도 없다.
■ 이원작소(理院鵲巢) = 까치가 법원(法院) 구내에 둥지를 튼다. 범죄가 없어서 법원이 한가하다는 말이므로, 잘 다스려지는 세상을 나타냄. 우리 사회가 이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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