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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필휴지

책가방과 후생가외

 

가여언이불여지언 실인 불가여언이여지언 실언 지자 불실인 역불실언(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知者 不失人 亦不失言)이라는 말이 있다.

 

"함께 이야기할 만한데도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고, 함께 이야기할 만하지 않은데도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말을 낭비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도 잃지 않고 말도 낭비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는 말이 통할 만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말을 해서 일깨워주어야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리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어제 절친한 친구가 책가방을 들고 찾아왔다.

 

내년부터 시작하게 될 주경야독(晝耕夜讀) 공부에서 더욱 열심히 하라는 의미에서 책가방 용도의 큼직한 배낭을 샀다고 했다. 너무 고마워서 꼬리곰탕을 점심으로 샀다. 친구의 촌철살인(?) 칭찬이 이어졌다.

 

친구는 이미 박사인데 굳이 그 나이에 공부를 하려는 의도를 모르겠다.” 친구가 말한 박사라는 과칭(誇稱)은 평소 내가 글을 너무 잘 쓴다며 붙여준 칭찬의 부사(副詞)이다.

 

그러나 진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는 박사는커녕 중학교조차 교문을 넘어보지 못한 무지렁이일 따름이다. 복고여산(腹高如山)의 금수저 출신이 아닌, 나처럼 장삼이사의 필부는 누구나 곡절의 삶을 내재하고 있다.

 

나의 지난날은 정말이지 파란만장의 나날이었다. 초등(국민)학교 재학 당시엔 1~2등을 질주할 정도로 공부를 썩 잘했다. 오죽했으면 담임선생님께서는 너는 훗날 반드시 서울대 갈 놈이다!”라는 말씀까지 입버릇처럼 하셨을까.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더욱 강공(強攻)으로 침입한 빈곤의 토네이도(tornado)는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무렵부터 나를 소년가장이라는 광야의 삭풍 속으로 내몰았다. 고향 역전에 나가 새벽부터 신문을 팔았다.

 

이어 구두닦이는 물론이고, 역 앞의 차부(車部, 시외버스 터미널)에 정차한 버스에 올라가 호두과자와 음료 등을 팔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렇게 고생을 했어도 집안 형편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6학년이 되자 그나마 근근이 지니고 있었던 집 한 채마저 아버지의 빚 변제를 위해 헐값에 처분하기에 이르렀다. 싸구려 월세방으로 이사를 했는데 공교롭게 초등학교 재학 당시 같은 반에서 1~2등을 다투었던 급우 여학생의 고래등 같은 커다란 집 바로 앞이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얼마나 부끄럽고 자존심까지 순식간에 와락 몰락하는 기분이었다. 사족이겠지만 그 여학생은 결국 서울대로 직행했다. 하여간 내가 비록 중학교조차 가지 못했지만 어제 책가방을 선물한 친구처럼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차고 넘친다.

 

중학교 과정 야학(夜學)을 앞둔 나는 벌써 후생가외(後生可畏)를 다짐하고 있다. 이는 젊은 후학(後學)들을 두려워할 만하다라는 뜻으로, 후진(後進)들이 선배(先輩)들보다 젊고 기력(氣力)이 좋아, 학문(學問)을 닦음에 따라 큰 인물(人物)이 될 수 있으므로 가히 두렵다는 말이다.

 

나는 비록 창창한 젊은이가 아닌 늙수그레 꼰대이긴 하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청춘이다. 어제의 참 고마운 친구는 서두에서 언급한 가여언이불여지언(후략)’에 부합되는 참 지혜로운 사람이다.

 

끝으로 한 마디 추가. 공부엔 나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