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몸이 너무 아팠다. 평소 새벽 4시면 자동으로 기상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눈을 감으면 끝없는 수렁 밑으로 침잠되는 듯 무기력의 포로가 된 느낌이었다. 겨우 일어나도 비틀거리는 등 마치 내 몸에서 중요한 나사 몇 개가 빠져나갔다는 느낌이 컨디션을 더욱 악화시켰다. 설상가상 두통과 기침, 가래까지 협공했다. 매사 무기력해진 나의 건강을 돌이켜보자니 한마디로 기분이 더러웠다! 그렇게 보름여를 고군분투했다. 그즈음 아들이 집에 왔다. “아버지, 왜 그렇게 수척하세요?” 아내가 대변인 역할을 자청했다. “네 아버지도 이젠 다 됐나 보다. 요즘 꼼짝을 못 해.” “얼른 병원에 가 보세요!” 대저 아버지는 아들을 못 이기는 법. 이튿날 병원을 찾았다. 폐와 간 기능 검사를 받는데 마치 판사로부터 사형선고를 받는 죄수의 심정이었다. 의사는 과연 어떤 말을 할 것인가! 혹시 “몇 달만 살다 죽을 것”이라는 극단적 판단은 없을까? 그렇게 노심초사하면서 의사가 부르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내 차례가 왔다. “홍 선생님께서는 평소 주량이 얼마나 되십니까?”, “흡연은 언제부터 하셨으며 하루에 태우는 담배는?” 아~ 정말 피곤하게 그런 건 대체 왜 묻는 거야? 다 내가 좋으니까 마시고 태우는 ‘기호식품’인 것을.
드디어 의사의 처방이 나왔다. “평소 과로에 스트레스까지 겹친 듯 보입니다. 그러니 가급적 쉬시면서 영양 보충도 좀 하시고요 ...” 안도의 한숨과 함께 순간, 어머니가 떠올랐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울엄마. 그랬다. 엄마는 아버지와의 불화로 내가 생후 첫 돌 즈음 가출했다. “왜 울엄마는 사진 한 장조차 없어요?” 내가 예닐곱 살 때 아버지께 물었던 단도직입 질문이었다. “글쎄 그게...” 끝내 얼버무리는 모습에서 나는 추측했다. 옆집 종구 아버지는 술만 처먹으면 지 마누라를 복날 개 패듯 두들겨도 종구 엄마는 안 도망가고 자식을 여섯이나 낳고 여전히 무럭무럭 잘살고 있거늘 내 마누라는 대체 뭐가 불만이었기에 나를 졸지에 홀아비로 만들었던가?(아버지의 입장을 대변하고자 쓴 글임)
무심한 세월은 강처럼 흘렀고, 아버지는 불과 오십도 못 채우시고 하늘의 별이 되셨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어머니의 부재에 더욱 통곡했다. 훗날 아들과 딸을 결혼시키면서도 어머니 없는 설움은 여전했다. 그처럼 어머니 없이 살아온 세월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워 책을 내기로 했다. 오늘 드디어 일곱 번째 저서의 원고 전체를 출판사에 보낸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나는 딱히 수입원이 일정하지 않다.
취재도 반 이상은 ‘봉사’다. 그래서 항상 누추하다. 이번에 발간하는 이 책 역시 지인들의 십시일반 크라우드 펀딩으로 도움을 받아서 출간하는 것이다. 하여간 병원을 나왔다. 뜨거운 햇살 위로 어머니가 보였다. 나는 60여 년 만에 비로소 엄마와 화해를 요청했다. “엄마, 의사가 말하길 딱히 제 건강이 나쁜 데는 없대요. 추측하건대 이건 다 엄마가 저를 건강하게 낳아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난생처음 드리는 고백인데 이젠 비로소 당신을 용서할게요. 엄마, 그동안 당신을 극도로 미워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사랑합니다. 엄마~” 하늘도 너그럽게 웃었다.
= “아침이 밝아오면 나 그댈 다시 볼 수 있나요 처음 만난 그 순간처럼 그댈 다시 사랑할게요 얼마나 많은 시간이 우리를 지나가고 지나가던 사람들 모두 우릴 축복했죠 어쩐지 오늘은 왠지 그대의 빈자리가 너무도 커 하루 종일 눈물만 흘렸죠 미안해요 그대를 아프게 해서 미안해요 해준 게 너무 없어서 미안해요 그대를 잊지 못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오늘은 꼭 한번 그댈 보고 싶어요” = 2008년에 발표된 거미의 <미안해요요>다. 마치 내가 어머니께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고 있지 싶다.
■ “어머니는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의지할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분이다.” - 도로시 피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