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을 ‘금요일’로 착각한 서울대생] 신문 기사를 보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 “사연은 이렇다. 서울대의 한 조교가 학생들에게 이런 공지를 남겼다. “금일 자정 이후로 과제물을 제출하면 매일 점수가 20점씩 감점되니 서둘러 제출하기 바랍니다.” 다음 날 한 학생이 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물었단다.
“과제 제출 금요일 아녜요? 금일 자정까지라고 하셨잖아요.” 조교는 답했다. “금일은 금요일의 줄인 말인 ‘금일’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뜻입니다.” 학생은 반박했다. “평가자라면 오해 소지가 있는 단어를 쓰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중략)“ -
이어지는 기사는 더 충격적이었다. ‘사흘’을 ‘4일’로 알아들었다는 것 외에도 ‘김을 파손(기물 파손을 오해함)’ ‘장례 희망(장래희망을 잘못 씀)’ ‘수박겁탈기(’수박 겉핥기’를 잘못 씀)’ ‘눈을 부랄이다(’눈을 부라리다’의 실수)’까지 나오는 판이라니 정말 웃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 아는 상식이겠지만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치고 신문이나 책을 보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온통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다가 내린다. 편견이겠지만 현실이 이렇다 보니 문해력(文解力)이 자꾸만 하락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해력이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문해력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첫째, 문해력은 교육 분야에서 매우 중요하다. 학생들은 교과서나 교재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데 이때 문해력이 부족하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학습 효율이 떨어진다. 또한 대학생이나 직장인에게도 업무 수행에 필요한 문서나 자료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있어서도 문해력이 필수적이다.
둘째, 문해력은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하다. 우리는 매일 뉴스나 인터넷 기사, 책 등 다양한 텍스트를 접하면서 정보를 얻고 의사소통을 한다. 하지만 문해력이 부족하면 이러한 텍스트를 이해하지 못해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셋째, 문해력은 경제에도 영향을 준다. 기업에서는 제품 설명서나 계약서 등을 작성하고 이를 이해하고 처리해야 하는데 문해력이 부족하면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문해력은 개인의 성장과 발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발전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 연습, 그리고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다. 나는 매일 새벽에 두 언론사의 종이신문을 받아서 읽는다. 이 또한 사견이지만 나는 신문은 여전히, 또한 영원한 종합백과사전이라고 믿는다. 신문만 봐도 문해력의 증강은 물론 글쓰기에도 최고 일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 “떠나야 할 사람인가 이토록 사랑하는데 떠날 시간 기다리는 가슴 아픈 우리 두 사람 눈물에 젖은 승차권을 말없이 건네주면서 이별이라 생각하니 추억이 새로워지네 잊어야 할 사람인가 이토록 사랑하는데 그 사람은 떠나가고 나는 이제 보내야 하네 눈물에 젖은 승차권은 마지막 인사이기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목이 메여 말을 못 하네 눈물에 젖은 승차권은 마지막 인사이기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목이 메여 말을 못 하네” =
1983년에 최진희가 발표하면서 히트곡이 된 <눈물의 승차권>이다. 얼마나 사랑했던 사이였기에 이별을 앞두니 승차권까지 눈물에 젖었을까? 그런데 비단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서만 이별이 가능한 건 아니다. 평소 책과 신문 등을 안 봐도 점차 문해력하고도 이별이 가능하다.
문해력과는 약간 성격이 다르지만, 독해력(讀解力)은 더욱 중요하다. 시민기자 활동을 오랫동안 계속하다 보니 그동안 참 많은 사람을 취재했다. 그중의 어떤 분과 인터뷰를 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연은 이랬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중간쯤의 딸로 태어났는데 부모님이 집에서 살림이나 하고 손바닥만 한 땅이나 일구라며 학교도 보내주지 않았다.
나이가 오십이 다 되도록 한글조차 읽을 수 없었다. 뒤늦게 주변의 권유를 좇아 어렵사리 야학에 다녔다. 주경야독과 절치부심 끝에 졸업식을 앞두고, 모 기관이 주최하는 ‘문해 한마당’ 행사에 나와서 당당히 장원을 했다. 그분을 인터뷰하면서 “내친김에 중학 과정은 물론 고교까지 배우시라.”고 했더니 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고지식하고 자신처럼 못 배운 남편이 절대 승낙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동병상련의 측은한 마음에 나는 그만 펑펑 눈물을 쏟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건 상식이다. 갈수록 책을 멀리하는 세태가 안타깝다. 평소 문해력이든 독해력이든 축적하지 않으면 결국 지식(智識)은 눈물의 승차권과 만나야 한다.
■ “독서할 때 당신은 항상 가장 좋은 친구와 함께 있다.” - 시드니 스미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