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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언제든 떠날 수 있다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CEO 과정 545 동기 모임 춘계 워크숍이 421일에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채비를 마친 동기생 11명이 대전세무서 주차장에 대기 중인 버스에 올라 충남 서산시 해미면 남문2143 [해미읍성]을 향해 출발했다.

 

545 동기 모임의 총원은 27명인데 다들 공사가 망하는(이는 공사다망을 유머러스하게 풀이한 나의 의도적 용어임) 바람에 불과 40%의 출석률을 보여 아쉬웠지만 모처럼 만나는 면면들이 반갑긴 여전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사회자 김0수 교수님은 특유의 재치와 덕담으로 빙고 게임을 펼쳐 푸짐한 경품과 선물, 현금까지 무차별 살포하는 바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해미에 도착했다.

 

해미읍성 앞에 도착하자마자 전국적으로 소문난 중국음식점 <영성각>에 들어가 짬뽕으로 배부터 채웠다. 이어 들어선 해미읍성은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기념 촬영에 이어 활도 쏘고 떨어지는 춘화(春花)에 아쉬움까지 실어 보냈다. 다음 목적지는 충남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1187 <천리포수목원>.

 

이곳 역시 여름에게 패잔병이 되어 위촉되어 있는 봄을 안타깝게 잡으려는 상춘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사진 찍기에 최적지인 곳이 너무 많아서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그곳이 곧 촬영 명당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캠핑장으로 소문이 자자한 충남 태안군 남면 신장리 <몽산포 해수욕장>. 채 여름이 도래하지 않은 까닭에 피서객은 드물었지만 바다의 격정과 아울러 기장 갈매기, 아니 태안 갈매기들과의 소통을 도모하고자 온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저녁 식사 예약을 한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방포항길38 <승진횟집>을 향해 달리던 중, 아뿔싸! 동기 중 한 분이 몽산포 해수욕장 화장실에 지갑과 차 열쇠 등 중요한 것을 몽땅 두고 승차한 것이 뒤늦게 인지되었다.

 

하는 수 없어 버스를 돌려 몽산포 해수욕장 관리사무소로 달려갔다. 그런데 역시 한국인들은 정직했다. 청소를 하던 중 습득했다며 가져다 보관 중인 지갑과 차 열쇠 등을 받으며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여행은 추억과 에피소드, 기억의 복합이다. “자칫 모든 걸 잃을 뻔했던 몽산포 해수욕장을 앞으론 꿈에서조차 잊지 못할 것이라는 동기의 조크에 우리는 모두 박장대소와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드디어 도착한 방포항 횟집 앞의 바다는 썰물이어서 부두(埠頭)로 바뀌었으며 배들이 다들 모래와 펄(밀물 때는 물에 잠기고 썰물 때는 물 밖으로 드러나는 모래 점토질의 평탄한 땅)에 포위돼 있었다.

 

이윽고 식탁에 오른 푸짐한 생선회와 각종 먹거리는 온종일 여정에 휘둘린 우리 동기들에게 새삼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CEO 과정 춘계 워크숍의 백미이자 하이라이트였다.

 

술과 바다의 밤바람에 더블(double)로 취하여 방포항 부두로 나와 노래를 들었다.

 

= “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이별이 아쉬워 두 손을 꼭 잡았나 눈앞에 바다를 핑계로 헤어지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보내주는 사람은 말이 없는데 떠나가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해 뱃고동 소리도 울리지 마세요 하루하루 바다만 바라보다 눈물지으며 힘없이 돌아오네 남자는 남자는 다 모두가 그렇게 다 아 아 이별의 눈물 보이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남자는 다 그래“ =

 

1984년에 발표한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였다. 지금과 달리 1980년대까지만 해도 결혼 이후 대부분의 남자는 밖에서 일을 하고, 여성은 집에서 가사를 돌보는 외벌이가 보편적이었다.

 

따라서 당시 여성의 가장 중요한 결혼생활의 덕목은 집을 안락하고 평안한 공간으로 만들고, 일하고 저녁에 돌아오는 남자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 자리에서 남자를 기다리는 여성을 항구, 밖에 나가서 일하고 돌아오는 남성을 배라고 비유하여 표현하지 않았을까 라는 추측이 성립된다.

 

또한 그즈음 수동적인 여성들의 삶을 비유적으로 묘사했던 것이 이 노래를 히트곡으로 부상시킨 원동력이었다는 생각이다. 세월은 바뀌어 이제 그런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요즘은 남자 혼자 벌어서는 살기가 힘들다. 더욱이 대기업이나 안정된 직장이 아닌 경우엔 맞벌이가 어쩌면 필수다.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던 과거의 성 역할 분담 방식 대신, 남녀가 서로 협력하여 일하며 가정을 돌보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론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대신에 남자는 항구 여자는 배로 바뀌는 시절이 오지 않을까 싶다. 돈도 못 벌면서 허구한 날 두문불출(杜門不出) ‘삼식이로 밥이나 축내는 무능한 남편이라면 복장이 터진 아내는 결국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뉘앙스까지 풍기는 그런 시절로.

 

아내의 질투는 돌풍을 동반한 폭풍우이다.” - 출처 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