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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표범

 

어떤 사진 현상 공모전이 있었다. 지난 시절의 사진과 현재의 사진을 함께 응모하는 수순이었다. 그래서 사진첩을 찾았다. 집에는 일반 사진 외에도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적에 받았던 각종의 상장 등도 정갈하게 보관 중이다.

 

그래서 그 자료들을 보면 지난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랍을 뒤지던 중 내가 당구를 치는 장면을 만났다. 1988년도에 찍은 걸로 봐서 얼추 40년이 다 된 사진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 역시 나는 당구를 못 친다.

 

어쩌다 당구를 친다손 쳐도 80점으로 시작했는데 소위 '삑사리(당구에서, 큐가 미끄러져 공을 헛치는 경우를 통속적으로 이르는 말)'라고 하는 큐 미스가 더 났다. 그래서 이기기보다는 지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저 지는 건 의식적으로 기피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지금도 당구는 가까이하지 않는다. 하여간 그 사진을 찍었을 당시는 어떤 조그만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할 때였다.

 

그즈음 아침부터 비가 내리면 영업사원 대부분은 회사 근처의 당구장으로 모였다. 그리곤 짜장면을 시켜 먹으면서까지 온종일 거기서 시간을 낭비했다. 처음엔 뭘 모르고 부화뇌동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깨달았다.

 

그처럼 농땡이나 치는 직원들과 어울린다는 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거라고. 이승만 전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지만, 영업사원은 반대였다. 영업사원은 고객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야만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 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

 

1985년에 발표하여 빅 히트를 기록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다. 하이에나는 정글의 청소부다. 비겁함의 상징으로도 곧잘 비유되는 하이에나는 일껏 잡아놓은 표범과 사자의 먹잇감까지 채뜨리는 얌체족이다. 반면 표범은 비록 굶어 죽을지언정 신사(紳士)의 품위를 잃지 않는 동물이다.

 

이런 까닭에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그동안 노래방에 가서도 그야말로 '원 없이' 불러봤다. 물론 지금은 숨이 차서 아예 부르지도 못하지만. 아무튼 영업사원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떼거리' 하이에나가 아니라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외로운' 표범"이 되어야만 했다.

 

그로부터 혼자서 철저하게 영업활동을 하였는데 덕분에 줄곧 높은 실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영업사원의 처우는 형편없었다. 기본급은커녕 오로지 자신이 판매한 상품의 일정 수당만이 수입 생성의 길이었다. 말로는 "영업만이 살길이다!"를 주창하면서도 정작 영업사원들이 먹고살 만한 토양을 마련해주는 경영주(사장)는 없었다.

 

예컨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도래해도 귀향 차비는커녕 싸구려 비누 세트나 달랑 하나 주는 게 고작이었다. 세월은 강물처럼 지나 영업사원을 그만 둔지도 꽤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라는 사고방식, 적극적인 영업사원 적 마인드, 즉 세일즈맨십은 강고(強固)히 견지하고 있다. 세일즈맨십은 개인이나 집단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게 하거나 판매자가 상업적 의의가 있는 관념에 따라 행동하도록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세일즈맨십이 필요한 이유는 판매 증진, 고객 만족도 향상, 조직의 성과 향상 등이라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세일즈맨십의 견지와 남다른 오기, 그러니까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의 연장선상에서 나는 비로소 책도 여러 권 낼 수 있었다.

 

용기는 인생의 강점이다." - 헤르만 헤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