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愛)과 사랑(舍廊)은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사랑(愛)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특히 그 대상은 이성(異性)이 주를 이룬다. 반면 사랑(舍廊)은 집의 안채와 떨어져 있는, 집주인이 찾아온 손님을 접대하는 곳에서 시중을 드는 하인(下人)쯤으로 격하된다.
나의 성장 과정과 청소년기가 꼭 그랬다. 그때까지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았다. 주변의 무관심 역시 견고했다. 진작 파산된 피폐의 가정환경은 극도의 상처를 강요했다. 부부간의 불화로 어머니가 집을 나간 집구석은 만날 아버지의 자학과 원망이 뒤섞인 술병만 나뒹굴었다.
어찌어찌 한술 뜨고 학교에 갔지만 ‘엄마 없는 놈’이라고 놀려대기 일쑤였다. 노골적 따돌림이었다. 그런 놈들에게 꿀리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공부에 매진했다. 덕분에 초등학교 1~3학년 때는 부반장을, 4~6학년 때는 3년 연속 학급회장을 꿰찼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더욱 거센 빈곤의 쓰나미가 습격하면서 중학교 진학은 물거품이 되었다. 대신 소년가장이 되어 갈수록 피골이 상접해지는 홀아버지의 봉양에 열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효녀 심청이야 공양미 삼백 석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지만 나에겐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갖은 고생을 하다가 십 대 후반에 어찌어찌 괜찮은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때 만난 나름 절세가인(絕世佳人)이 바로 지금의 아내다. 나는 정말이지 그녀를 보는 순간 한눈에 매료되었다. 사랑에 늪에 빠진 것이다. 그것도 흠뻑. 사람이 사랑하는 이유는 뭘까. 먼저 감정적 유대감이다.
유대감은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데 도움이 되며, 상대방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든다. 사랑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통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성적 욕구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자아내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특히 대중적 정치인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필요한 기본옵션이다. 사랑은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태어나서 20년 가까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건만 그녀는 달랐다.
진정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에서 나는 그녀에게 푹 빠졌다. 역시 사랑은 달콤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부부가 되었다. 이듬해 떡두꺼비 아들을 보았다. 비로소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는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러나 희비는 마치 파도처럼 교대로 찾아오는 법. 아들이 불과 두 살 때 아버지께서 세상을 버리셨다. 엄동설한에 선친을 땅에 묻으면서 새삼 비정한 어머니를 덩달아 매몰(埋沒)했다. 아무리 피치 못해 이혼한 부부였을지라도 정작 자녀가 결혼할 적엔 예식장에 와서 혼주석에 잠시라도 앉았다 가는 게 부부의 도리이거늘.
부부가 이혼을 하더라도 자녀와의 관계는 유지되며, 자녀의 결혼식은 부부가 함께 축하해야 할 중요한 축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허무하게 별이 되신 선친의 올 설날 차례상도 역시 아내가 정성을 다하여 차렸다. 어느덧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몸이 부실하여 그동안 몇 차례 수술을 받은 까닭에 아내는 고삭부리 아낙으로 훼손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설과 추석, 선친의 기일이 되면 그야말로 원더 우먼(wonder woman)으로 돌변한다. 올 설에도 그랬다. 그 바람에 또 몸살이 찾아왔다.
그래서 예정했던 또 다른 수술 일정을 미뤘다. 안 아프고 건강만 한 삶이라면 오죽이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삶은 애초 존재할 수 없는 게 생로병사의 길을 가는 나그네 처지인 우리의 인생길이다. 따라서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배려하며 조그만 것이나마 거기서 행복을 찾는 노력을 병행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사람은 누구나 취미가 있다. 취미는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다양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취미라곤 하되 나는 등산이나 낚시, 댄스, 당구, 볼링 이딴 건 모른다.
그저 좋아하는 거라곤 평소 글쓰기와 대중가요 듣기다. 대중가요는 그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상황 등을 반영하며, 대중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대중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위로와 공감을 얻기도 한다. 요즘 들어 더욱 흠뻑 매료되어 툭하면 유튜브로 듣는 가요가 2023년에 발표한 나훈아의 '기장 갈매기'다.
= “동쪽에서 바라보면 여섯 개로 보이고 서쪽에서 쳐다보면 다섯 개로 보이는 오륙도 돌고 돌며 나래 치는 내가 바로 내가 바로 기장 갈매기다” =
가사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어지는 가사는 더욱 압권이다. “사랑 따윈 누가 뭐래도 믿지 않는다 이별 따윈 상관없다 떠나든 말든 어차피 사랑이란 왔다가는 파도처럼” 가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란다. 역시 대장부답다.
이 노래를 더 아끼는 이유는 다음에 이어지는 가사가 내 폐부를 더욱 콕콕 찌르기 때문이다. “내 청춘은 누가 뭐래도 의리 하나다 / 빈 주머닌 상관없다 없어도 그만 / 어차피 인생이란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가버리는 것”이니까.
가히 물질에 달관한 도사의 청빈을 보는 듯싶다. 나는 물론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고,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본질인 도사와는 거리가 멀다. 아내와 살아오면서 그동안 벌였던 사업과 장사에서 연전연패하는 바람에 여전히 궁핍하다. 따라서 뭐가 되었든 돈벌이가 되는 거라면 마다할 이유가 부족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말 소중한 나의 가치관과 윤리적 기준을 지키는 것에 소홀하지 않는다. <기장 갈매기>에서 나를 가장 매료시킨 가사 ’내 청춘은 누가 뭐래도 의리 하나다‘에 방점을 찍고자 한다.
“여보, 이 못난 남편을 떠나지 않고 입때껏 잘 살아주어 정말 고맙소! 이 풍진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게 나를 사랑해 준 당신이 있었기에 나는 그 모진 풍파와 크레바스보다 깊었던 세파까지 견딜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젠 비록 청춘은 아니고 노년이긴 하되 누가 뭐래도 나 또한 삶의 모토가 ’의리 하나다‘였다는 건 당신도 익히 잘 알리라 믿어요.
돌이켜보건대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은 바로 당신이었소.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앞으로도 나의 당신을 향한 의리만큼은 추호도 변질이 없을 것임을 약속합니다. 내 삶은 누가 뭐래도 당신 하나요. 사랑합니다. 당신만을 영원토록.“
■ “가장 좋은 향수를 지닌 여성은 향수를 뿌리지 않은 여성이다.” - 출처 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