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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

= “검은 머리 하늘 닿는 다 잘난 사람아 이 넓은 땅이 보이지 않더냐 검은 머리 땅을 닿는 다 못난 사람아 저 푸른 하늘 보이지 않더냐 있다고 잘났고 없다고 못 나도 돌아갈 땐 빈손인 것을 호탕하게 원 없이 웃다가 으랏차차 세월을 넘기며 구름처럼 흘러들 가게나” =

 

2005년에 소개되면서 현진우를 스타로 만들어준 가요 <빈손>이다. 이 노래 가사의 압권은 있다고 잘났고 없다고 못 나도 돌아갈 땐 빈손이라는 것이다.

 

즉 살았을 때는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눈에 불까지 켜면서 살았을지 몰라도 죽을 때는 모두 똑같이 무일푼이라는 것이다.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의 왕(B.C.356~B.C.323)으로써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또한 그 정복지에 다수의 도시를 건설하여 동서 교통, 경제 발전에 기여하였고,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하였다. 하지만 생로병사의 어두운 그늘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법.

 

알렉산더 대왕의 병세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왕의 측근들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 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유명한 명의들이 많이 왔다 갔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당시엔 화타(華佗, 중국 한나라 말기의 의사로 편작과 더불어 명의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와 같은 명의가 없었던가 보았다. 그런데 허둥대는 측근들과는 다르게 알렉산더 대왕은 오히려 침착했다.

 

그의 얼굴에는 병색이 짙었지만 타고난 강인한 정신력으로 조금씩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듯했다. 신하들이 자리에 누워 휴식을 취할 것을 권하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게, 사람이란 죽으면 잠을 자게 되는 법, 그러니 살아서 눈 뜨고 있는 이 순간 어찌 잠잘 수 있겠는가?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시간을 가장 충실하게 보내리라.”

 

그러던 알렉산더 대왕도 병이 점점 더 깊어지자 자리에 앉아 있을 힘조차 없게 되었다. 측근들은 이미 병색이 심해 절망에 빠져있었으며 동시에 그의 마지막 유언은 무엇일까?’하고 궁금해했다.

 

하지만 사경을 헤매면서도 알렉산더 대왕은 좀처럼 유언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알렉산더 대왕은 모든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힘겹게 입을 열어 간신히 말을 했다.

 

내가 죽거든 내 손을 관 밖으로 내놓아 남들이 볼 수 있도록 하시오.” 걱정스럽게 그의 유언을 기다리던 신하들과 백성들은 어리둥절하며 놀랐다. 그러자 알렉산더 대왕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천하를 차지한 나 알렉산더도 죽을 때는 빈손으로 떠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오.” 그제야 비로소 신하들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왕을 더욱 존경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위대했던 알렉산더조차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이치와 원칙을 인지하였거늘 하물며 대부분의 장삼이사(張三李四, 장씨(張氏)의 셋째 아들과 이씨(李氏)의 넷째 아들이라는 뜻으로, 이름이나 신분이 특별하지 아니한 평범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들은 그마저 안중에 없이 마치 죽을 때도 재물을 저승으로 가져갈 요량인지 지금 이 시간에도 재물 축적에 혈안이 되고 있음을 자주 보게 된다.

 

사람은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이 같은 가치관도 종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인생이 의미 있는 이유는 곧 멈추기 때문이다.” - 프란츠 카프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