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급우들이 중학교 갈 때 나는 소년가장이 되어 역 앞 차부에서 행상을 했다. 심지어 가짜 고학생 노릇까지 한, 지우개로 지우고만 싶은 어두운 과거가 실재한다.
“아무리 어두운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나의 어두운 시기가 비슷한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 메기 베드로시안이라는 사람이 지은 시 <그런 길은 없다>이다.
”눈 덮인 들길을 걸어갈 때에는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후세들에게 이정표가 될 것이니.“라고 일갈(一喝)한 서산대사의 주장과 배치(背馳)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올해 내 생일을 맞은 날에는 아들과 딸네 식구들이 총출동했다. 평소 생일이라곤 해도 별로 감흥이 없는 터다. 아내와 불과 이틀 사이로 생일을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 오겠다는 아들과 딸을 만류했지만, 아이들은 그예 자가용과 열차로 집에 왔다. 점심은 집에서 아내가 정성껏 만든 나름 진수성찬으로, 저녁은 시내로 나가 해신탕을 먹었다.
그 사이 아들은 길 건너 성심당으로 달려가 케이크까지 사 왔다. 케이크 위의 양초에 불을 붙이자, 손주가 훅~ 불어서 불을 껐다.
”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고마워! 우리 손자 손녀,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 딸이랑 사위도 건강하고 만사형통하는 한 해가 되길 빌게.“
극구광음(隙駒光陰)이라는 사자성어가 예사롭지 않다. 이는 ‘내달리는 말을 문틈으로 보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세월의 흐름이 썩 빠름을 의미한다. 어제 나는 이 ‘팩트’를 새삼 느꼈다.
▶ 돈이 없어 신혼여행은 대전에서 가까운 보은 속리산으로 가서 1박한 뒤 아침만 먹고 돌아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큼은 나이를 안 먹을 줄 알았다. 착각엔 커트라인이 없다더니 틀려도 한참을 틀렸다.
가수 서유석은 2015년에 발표한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라는 가요에서 =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출발이다 삼십 년을 일하다가 직장에서 튕겨 나와 길거리로 내몰렸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백수라 부르지
월요일에 등산 가고 화요일에 기원 가고 수요일에 당구장에서 주말엔 결혼식장 밤에는 상가 집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출발이다 세상나이 구십 살에 돋보기도 안 쓰고 보청기도 안 낀다
틀니도 하나 없이 생고기를 씹는다 누가 내게 지팡이를 손에 쥐게 해서 늙은이 노릇하게 했는가? 세상은 삼십 년간 나를 속였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 라고 당당히 응수하고 있다.
여기서 나와 부합되는 곳은 등산과 결혼식장, 그리고 상갓집이다.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 하나가 또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토요일은 오늘은 지인 여식의 예식장에 가야 한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인간의 흐름이다. 또한 ‘장강(長江)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낸다’는 건 상식이다.
따라서 사람이 늙음을 탓한다는 건 진시황이 영생불사(永生不死)를 염원했던 것처럼 실로 어리석은 수작이다. 나도 늙었으니까 비로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여운 손주를 볼 수 있었음이 이런 주장의 방증이다.
더 이상 늙었다고 자조(自嘲)하지 말자. 정서적으로 나는 아직도 새파란 청춘이니까. 그래서 한 마디 더. “아무리 늙어가는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먼저 지나갔을 것이다.” 이 순간부터 나도 새출발이다.
■ “승리는 가장 끈기 있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 첫 직장이 공교롭게 영어회화 테이프와 교재를 파는 회사였다. 중학교라곤 문턱도 넘지 못 했으니 영어를 알 리 없었다. 이를 악물고 영어를 뒤늦게 배움과 동시에 교재와 테이프 전체를 달달 암기했다. 덕분에 전국 판매 왕에 이어 약관 26세엔 전국 최연소 사업소장으로 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