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전시립중고등학교를 찾았다. 2025학년도 야간반 등록을 하고자 간 것이다. 등록 첫날이었음에도 정원이 꽉 차고 겨우 달랑 하나 남았다고 하여 간이 철렁했다. 내 뒤에도 어르신 두 분이 차례를 기다리고 계셨다.
간발의 차로 가까스로 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 내년 2월 17일에 신입생 예비 소집이 있다는 입학 안내문을 받았다. 입학식은 2025년 3월 4일이다. 턱걸이로 등록을 마친 뒤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전시립중고등학교를 나오는데 이 학교에 등록을 적극 권유하신 K 교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등록하셨나요?" “네! 하마터면 미역국 먹을 뻔했습니다.” “와~ 축하합니다! 축하주 사드릴 테니 어서 오세요.” 택시를 타고 유성구 봉산동 식당까지 갔다. K 교수님께서 따라주시는 술을 받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지난 1972년은 어느덧 52년 전이다.
당시는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서 중학교에 가는 비율이 3분의 2에 불과했다. 나머지 3분의 1은 대신 삭풍이 휘몰아치는 광야로 내몰렸다. 그렇다면 나는 왜 중학교조차 진학하지 못했을까? 거기엔 다 곡절이 숨어있다.
먼저, 나는 어머니가 아버지와의 불화로 인해 나의 생후 첫돌 무렵에 집을 나갔다. 영원한 가출이었다. 실의에 빠진 아버지는 허구한 날 술만 드셨다. 가장의 책무까지 방기한 아버지는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졌고 건강까지 이상이 왔다.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가뜩이나 가난했던 우리 부자(父子)는 굶어 죽기 십상이었다.
반에서 항상 1~2등을 다퉜던 우수한 성적이었지만 5학년 2학기 무렵부터는 고향 역전으로 내몰렸다. 신문팔이와 구두닦이로 돈을 벌었다. 비가 쏟아지면 우산 도매상으로 달려가 우산을 떼다 팔았다. 6학년이 되면서는 더욱 학교에 가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목구멍에 풀칠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로 더욱 현저하게 늙어갔고 급기야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몰렸다. 이러구러 세월은 흘러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군복무를 작은댁에서 마쳤다. 숙부님의 배려 덕분이었다.
전역한 뒤, 나를 처음으로 사랑해 준 지금의 아내와 싸구려 셋방을 얻어 분가했다. 이듬해 아들을 보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불과 두 살일 때 한 많은 이 세상을 버리셨다.
혹여 아버지의 산소에는 어머니가 오시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물거품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태산보다 더 높아졌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배운 게 없다 보니 비정규직, 세일즈맨, 계약직, 공공근로 따위의 허투루 직장과 직업만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겪은 불학의 고통과 아픔을 아이들에만큼은 물려주지 않겠노라 이를 악물었다. 아들과 딸이 어렸을 적부터 손을 잡고 함께 도서관을 다녔다. 그 결과 사교육의 도움 없이도 아이들은 소위 명문대를 갔다. 독서의 위대함을 새삼 발견했다.
나도 덩달아 만 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덕분에 지난 9월에 출간한 [가요를 보면 인생을 안다]를 포함하여 모두 일곱 권의 저서를 발간할 수 있었다. 병행하여 20년 전부터 정부 기관과 지자체 언론사 등지에서 시민기자와 리포터, 객원기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글 더 잘 쓰기 노하우를 스스로 터득했다.
나이 오십에는 3년제 사이버대학을 주경야독으로 마쳤으며 작년엔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 경영자 과정도 이수했다. 주변의 많은 분들께서 도와주신 덕분의 소득이었다.
며칠 전 대전시립중고등학교를 찾아 내년도 중학 과정 야간반에 턱걸이로 등록한 데는 까닭이 존재한다. 모 대학 교수님이자 대학원 최고 경영자 과정에서도 은사였던 K 교수님의 나를 향한 강력한 면학 의지 전도(傳道)가 발단(發端)이었다.
“홍 작가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입니다. 반드시 대전시립중고등학교를 마치시고 내처 대학과 대학원까지 진학하시어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세요. 홍 작가님은 얼마든지 그럴 자격이 있는 분입니다. 제가 곁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결국 K 교수님의 열정이 그만 나를 면학의 66세 중학생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내 나이 66세가 되는 내년 3월이면 나도 대망의 중학생이 된다. 그 얼마나 오매불망 그려왔던 공부였던가!
작년, 뉴스에서 인기 가수 인순이(올해 나이 68세)가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취득했다는 보도를 봤다. 순간, 뒤통수를 망치로 가격당하는 것과 같은 충격을 느꼈다.
맞아, 공부엔 나이가 필요 없어. 대전시립중고등학교 등록을 마친 뒤 배수진을 친다는 의미로 내 블로그에 그 같은 팩트 내용을 올렸다. 아울러 카카오톡 단톡방에도 올렸더니 가슴 찡한 지인들의 성원과 응원이 봇물이 터지듯 했다.
심지어 작년에 92세 나이에 그예 박사가 된 성공회대학교 국내 최고령 박사 이상숙 님의 기사까지 캡처하여 보내준 분도 계셨다. 아울러 “홍 작가님께서 훗날 박사까지 되셔도 이 할머니 연세보단 젊으실 것”이라는 응원까지 덧붙여 나는 감격하여 눈물이 줄줄 흘렀다.
또 한 친구는 학생이 되었으니 튼튼한 책가방을 사주겠다고 하여 마찬가지로 눈가를 흥건하게 만들었다. 몽중상심(夢中相尋)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몹시 그리워서 꿈에서까지 서로 찾는다’는 뜻으로, 매우 친밀(親密)함을 이르는 말이다. 어쩌면 내 평생의 꿈이자 소원이었던 것이 바로 공부였다.
따라서 내년부터 중학생이 되는 나는 이제야 비로소 소원 풀이를 하는 셈이다. 술자리를 파한 뒤 다시금 내 집 앞까지 태워다 주신 K 교수님께 나는 호언장담했다. “K 교수님. 저, 반드시 박사까지 오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