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골탑(牛骨塔)은 가난한 농가에서 소를 팔아 마련한 학생의 등록금으로 세운 건물이라는 뜻으로, ‘대학’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우골탑은 ‘소의 뼈로 쌓은 탑’이라는 뜻으로, 높은 교육열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자식의 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소와 같이 집안의 큰 재산을 파는 농촌의 가정 모습에서 비롯된 말로, 비싼 등록금이 부담되지만 농사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대학에 보내려는 부모의 교육열을 나타냈다.
학교 재정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들의 등록금이 부모의 희생에서 나온 것을 상징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 농기계로 농사를 짓지만, 과거엔 소가 없으면 정말 힘들었다.
아무튼 우골탑의 지극정성 덕분에 대한민국은 오늘날 선진국 진입의 경제 탄탄 국가로 변모했다. 그만큼 배움, 즉 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음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어제는 대전시립중고등학교를 찾았다. 2025학년도 야간반 등록을 하고자 간 것이다. 등록 첫날이었음에도 정원이 꽉 차고 겨우 달랑 하나 남았다고 하여 간이 철렁했다. 내 뒤에도 어르신 두 분이 차례를 기다리고 계셨다.
간발의 차로 가까스로 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 내년 2월 17일에 신입생 예비 소집이 있다는 입학 안내문을 받았다. 입학식은 2025년 3월 4일이다.
턱걸이로 등록을 마친 뒤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전시립중고등학교를 나오는데 이 학교에 등록을 적극 권유하신 K 교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등록하셨나요?" “넵! 하마터면 미역국 먹을 뻔했습니다.” “와~ 축하합니다! 축하주 사드릴 테니 어서 오세요.” 택시를 타고 유성구 봉산동 식당까지 갔다. K 교수님께서 따라주시는 술을 받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지난 1972년은 어느덧 52년 전이다. 당시는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서 중학교에 가는 비율이 3분의 2에 불과했다. 나머지 3분의 1은 대신 삭풍이 휘몰아치는 광야로 내몰렸다.
남자애들은 양복점, 구두점, 노동판 따위로 나가 얻어맞으면서 기술을 배우고 돈을 벌어야 했다. 여자애들은 방직공장, 버스 안내양, 식모, 심지어는 선금을 받고 유흥가로 팔려 가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나 역시 찢어질 듯 가난했기에 중학교하곤 인연이 없었다. 물론 이후 만 권의 책을 읽었으며,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일곱 권의 책을 낸 작가에 이어 기자까지 되었지만, 대학을 나왔다거나 특히 ‘박사’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기 일쑤였다.
다시금 내 집 앞까지 태워다 주신 K 교수님께 나는 호언장담했다. “K 교수님. 저, 반드시 박사까지 따겠습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시작이 반, 아니 시작은 곧 끝이다. 배움이 없는 인간은 상처받은 인간이다. 호기심은 배움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