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그동안 앓던 이를 뽑아냈다. 불편하기 짝이 없었던 어떤 지인과의 인간관계를 정리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불필요한 갈등이나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는 친목의 범주와 목록에서 삭제하거나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그러나 이 과정에서는 상대방과의 감정을 고려해야 하며, 서로 간의 이해와 합의가 필요하다.
또한, 인간관계는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으므로 일시적으로 거리를 두거나 정리하더라도 다시 가까워질 수도 있다. 따라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아무튼 누구나 사람은 십인십색이다. 나는 유달리 자존심이 강하다. 물론 그래서 평소 예의를 존중하고 의리를 숭상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최근 절연한 사람은 그런 나의 가치관까지 일거에 붕괴시키며 심지어 어떤 역린(逆鱗)까지 건드렸다.
역린은 임금의 노여움을 이르는 말이다. 용(龍)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용이 크게 노(怒)하여 건드린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는 데서 유래한다. 물론 나는 임금은커녕 저잣거리의 장삼이사에 불과하다.
어쨌든 오랜 기간 남다른 우애를 자랑했던 터였기에 절연한 후에 소문을 들은 이들 중에는 꽤 놀랐다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절연(絕緣)은 정리(整理)와 궤를 같이한다.
정리는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함을 뜻한다. 또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지 아니하고 끝냄까지 아우른다.
평소 존경하는 교수님이 이르길 “좋은 사람만 만나기에도 시간이 촉박하다”라고 하셨다. 그렇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네 삶의 인생 시계는 잠시도 쉼 없이 앞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가수 진시몬의 히트곡 ‘보약 같은 친구’ 가사처럼 언제 갈지 모르는 게 바로 우리네 인생이다. 이제 더 이상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안 받기로 작심했다. 항상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는 지갑 전면에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글귀를 인쇄하여 부착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