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도서관에서 『몽실 언니』를 빌려와 읽었다. 이 책을 보면서 몇 번이나 울었다. 마치 나의 과거를 보는 듯해서였다.
동화 작가 권정생이 쓴 이 작품은 판화가 이철수 화백이 중간마다 그림을 넣은 덕분에 가슴에 다가오는 리얼리즘(realism)이 거센 파도 이상으로 더욱 요동친다. 이 책의 주인공 ‘몽실’은 지독한 가난뱅이 부부의 큰딸이다.
먹을 것조차 없어서 구걸을 하여 겨우 입을 축이는 비참한 현실에 몽실의 아버지 정 씨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집을 나간다. 이후 몽실 엄마 밀양댁은 몽실의 동생 종호가 먹지 못해 죽자 결심하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사람은 쉬이 계명워리(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라고 폄훼할지 몰라도 당시 밀양댁으로서는 먹고살기 위한 어쩌면 유일한 방편으론 그것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 남자(새아버지)는 결국 몽실을 패대기쳐서 평생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로 만든다. 그러나 몽실은 그런 악독한 새아버지조차 용서한다.
나는 이미 일곱 권의 저서를 통해 이실직고했듯 올해 65세인 지금껏 “엄마”라는 소리를 내본 적이 없다. 엄마의 얼굴조차 알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인해 나의 생후 첫돌을 즈음하여 영원히 가출한 엄마는 내 평생의 원수이자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지독하게 꿍꿍 앓고 난 올 여름에야 비로소 엄마를 용서했고, 지금은 사찰에 갈 적마다 부처님께 빌고 있다.
“울 엄마 극락왕생하게 해 주세요!” 여기서 잠시 지난 고난의 시절을 회상해본다. 어버이날(과거엔 ‘어머니날’)이 되면 교실로 급우들의 어머니들이 모두 몰려와 자신의 자녀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환호작약(歡呼雀躍)했다.
그렇지만 나와는 하등 상관없는 우울한 축제일 따름이었다. 나는 교실을 슬며시 빠져나와 학교 뒷산에 올랐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름조차 어머니 구름이 아이들 구름을 데리고 어디론가 마실을 가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
그동안 사는 게 너무 힘들고 각박하여 몇 번이나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경험한 사람은 잘 알겠지만 사람이 죽음에 이르렀다 돌아오면 삶의 가치관이 달라지며 더욱 담대해진다.
마음을 고쳐먹은 나는 만 권의 책을 읽고 작가로 등단했다. 이후 단독 저서 일곱 권과 공저(共著)까지 포함하면 50권을 저술한 ‘프로’가 되었다.
나는 다음 달에 과분한 큰 상을 두 개나 받는다. 이에 대해 혹자는 괜스레 나를 시기하고 심지어 모함까지 하는 경우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괘념치 않는다.
그렇게 나를 비방하는 사람은 입때껏 책 한 권조차 발간하지 못한(아니면 집필과 출간에 능력이 없거나)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몽실 언니’는 나의 축소판과 같다.
몽실 언니는 자신에게 불리하고 어려운 환경을 모두 긍정으로 이해하고 용서했으며 사랑이라는 이불로 덮어주는 아량까지 베풀었다. 나도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련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홍경석 작가의 남다른 자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