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전화를 했다. “홍 작가님, 뭣 좀 문의하려고요.” “네, 말씀하세요.” “경비원으로 일하신 적 있으시죠?” “그렇습니다만...”
“실은 제가 직장을 정년퇴직한 뒤 놀 수 있는 입장이 안 됩니다. 그래서 경비원으로라도 취업 좀 해 보려는데 조언 좀 얻으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순간 나의 기억은 타임머신을 타고 몇 년 전, 그러니까 박봉의 경비원으로 일했을 적으로 이동했다.
다음은 그즈음의 일기(日記)다. => 어제 야근을 들어와 일하다가 오늘도 새벽 2시에 교대를 했다. 내가 교대해 주기만을 학수고대하던 동료는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지하 1층의 경비실로 내려갔다.
그도 나처럼 늘 그렇게 부족하기 짝이 없는 잠을 자야 하는 때문이었다. 비록 쪽잠이나마 눈을 붙이지 않으면 살 수 없기에. 그렇게 내려간 동료는 오전 6시가 되어 다시 올라와서 지상 1층의 안내데스크를 지키는 나와 교대했다. 그 동료가 물었다.
“오늘은 쉬시는 날인데, 날도 좋으니 산이라도 가시죠?” “팔자 좋은 소리 하시네요. 사는 게 힘들어서 오늘도 알바 나가야 합니다!” 이에 금세 그의 동조(同調)가 이어졌다.
“하긴 저도 알바를 하지 않으면 이 박봉으론 도저히 살아 나갈 방도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아이가 대학생인 까닭에......”
그에 비해 나는 당시, 두 아이가 대학을 마치고 직장까지 다니고 있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긴 하지만 이는 고작 정서적 입장의 접근이고, 현실적 관점에서 보자면 여전히 험준한 ‘보릿고개’에 다름 아니다.
야근은 통상 전날 오후 5시까지 들어와서 이튿날 오전 7시에 퇴근한다. 따라서 14시간을 근무하는 셈이다. 야근 중에 가장 심각한 건 바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불면증으로 고생한다고 들었다.
불면증을 방치하다간 자칫 우울증의 위험까지를 초래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와 같은 경비원은 반대로 불면증(不眠症)이 고민이 아니라 구면증(求眠症), 그러니까 되레 잠을 열렬히 청해야만 되는 직업군에 속한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 하면 신체적 피로감은 물론이요 집중력 저하와 의욕 상실 등의 또 다른 부작용이 마치 퍼펙트스톰(Perfect Storm)처럼 쓰나미로 닥친다. 따라서 퇴근하는 즉시 눈부터 붙여야 한다.
경비원의 고충은 비단 이뿐만 아니다. 1년 단위의 계약직인 까닭에 고용불안의 먹구름은 늘 그렇게 밧줄처럼 전신을 친친 동여매고 있다. 하지만 정작 최대의 애로 사항은 뭐니 뭐니 해도 단연 박봉(薄俸)이란 사실이다.
최저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인지라 매달 적자다. 더욱이 나처럼 외벌이 남편과 가장의 경우, 그 생활고는 이루 말할 나위조차 없다. 그 때문에 쉬는 날엔 알바와 투잡까지 병행하는 중이다. <=
당시에도 나는 알바와 투잡(two job, 경제적인 목적이나 자아실현을 위하여, 한 사람이 동시에 두 가지 일이나 직업에 종사하는 일. 또는 그런 일이나 직업) 개념으로 시민기자 활동에 주력했다.
덕분에 어찌어찌 격랑의 빈곤 파고를 헤쳐올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인에게 물었다. “경비원 일자리는 알아보셨나요?” “네,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시스템이라네요.” 나는 서둘러 만류했다.
“그럼 하지 마세요! 골병드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렇게 근무하다 보면 사람이 일을 하는 것보다 일에 사람이 끌려다니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었다. 경험해 봐서 잘 아는데 사람이 일에 종속(從屬)되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일과 개인 생활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임창정이 2013년에 내놓은 작품이 가요 <문을 여시오>이다.
= “오늘도 자꾸 이렇게 하루하루가 흘러만 가는데 아직도 혼자 방에 앉아서 무슨 고민에 빠져 있나요 여보세요 문을 여시오 여보세요 문을 여시오 문을 여시오(여보세요)
오늘 하루를 그냥 보내는군(문을 여시오) 오늘 하루를 마냥 앉아 있나요(여보세요) 이 늦은 발걸음을 어서 떼세요(문을 여시오) 어둠이 꽉 닫힌 문을 여시오 아침이 밝았는데 태양이 떠오르는데 마음의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지 않고 왜 넌 왜 도대체 왜
오 왜 여보세요 문을 여시오 여보세요 문을 여시오 문을 여시오 어제도 똑같은 하루 시간은 점점 지나가는데 아무도 몰래 눈물 닦으며 아무 일 없는 듯 앉아 있나요 여보세요 문을 여시오 여보세요 문을 여시오 문을 여시오 (여보세요) 오늘 하루를 그냥 보내는 군” =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겐 오늘도 천금 같은 하루가 허송세월로 흘러만 간다. 그렇다고 히키코모리(Hikikomori)처럼 두문불출(杜門不出)만 하다 보면 때론 심각한 후유증까지 돌출될 수 있다.
‘히키코모리’는 오랜 기간(일반적으로 반년 이상) 집에 틀어박혀 사회와의 접촉을 극단적으로 기피하는 행위, 혹은 그런 사람을 칭하는 일본의 신조어다. 정신병리학적으로는 회피성 성격장애와 유사하다고 한다.
임창정의 조언(?)처럼 오늘 하루를 무의미하게 그냥 보내지 말고 발걸음을 어서 떼야 한다. 아침이 밝았고 태양까지 떠오른다면 응당 마음의 문까지 활짝 열고 저 넓은 사회로 힘껏 출격해야 한다. 그래야 돈도 붙는다.
■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폐해는 풍요의 불평등한 분배이고, 사회주의의 태생적 미덕은 가난의 평등한 분배다.” - 출처 미상 -